1945년 8월 15일, 광복의 날.
거리에는 만세 소리가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해방의 기쁨을 나누고 있었겠죠.
그날의 공기 속 향기는 어땠을까요? 당대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풍기던 ‘그 시절의 향’이었을 것입니다.
전통과 근대가 교차하던 그 시점의 향기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결을 가졌겠죠.
물론 여름이라 온갖가지 땀냄새들이 동시에 풍겼겠지만, 기쁨으로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 같아요.
오늘은 광복절을 맞이하여,
기록과 사료, 생활사 자료를 바탕으로 1945년 광복 무렵의 향에 대해 공부해 본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대한민국만세~~~ 🙌
전통의 향 – 향낭과 향갑에서 풍기던 향기
광복 이전까지 한국의 일상 속 향은 오랫동안 이어져온 전통에서 비롯됐습니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향낭(비단 주머니에 향료를 넣어 몸에 지니는 것)과 향갑(금속·나무·도자기로 만든 향기 보관함)은 20세기 초까지도 혼례나 명절, 의례에서 사용됐습니다.
향낭 관련해서는 제가 예전에 쓴 글이 있는데 한 번 보실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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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낭 안에는 침향, 사향, 백단, 용뇌(龍腦, Borneol) 등 귀한 향료가 들어갔습니다. 침향은 묵직한 우디와 스모키 향, 사향은 부드러운 동물성 머스크 향, 용뇌는 시원하고 청량한 카민티브 향을 냈다고 해요. 이것들은 단순한 향기가 아니라,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고 해충을 쫓는 실용적 목적도 있었습니다.
현대 재현 팁
천연 사향은 현재 멸종위기종 보호 및 규제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대신 합성 머스크나 화이트 머스크, 샌달우드, 인센스 오일을 사용하면 비슷한 감각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용뇌 대신 캄포(Camphor)나 유칼립투스 오일을 소량 블렌딩하면 청량감을 재현할 수 있습니다.
머릿결에서 풍기던 동백 머릿기름의 향
해방 직후에도 여성들의 머릿결 관리에는 동백기름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아모레퍼시픽 사사에 따르면, 1932년 개성에서 윤독정 여사가 동백 머릿기름을 만들어 판매한 것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전통은 1945년 광복 이후에도 이어졌고, 머릿결을 윤기 있게 유지하는 필수품이었습니다.
동백기름 특유의 은은하고 부드러운 향은 기름 냄새와 씨앗류의 고소한 향이 어우러진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특히 빗질할 때 은근히 퍼져 나가던 향은, 당시 여성들의 이미지와도 연결되었습니다.
현대 재현 팁
호호바 오일이나 카멜리아 오일(CO₂ 추출)을 베이스로, 로즈우드나 라벤더 오일을 아주 소량 블렌딩하면 머릿결 관리와 함께 향기 재현이 가능합니다.
도시 속 향 – 코롱과 포마드, 근대의 시작
1920~30년대 조선의 신문·잡지를 보면 이미 코롱(Cologne), 향수, 포마드 광고가 활발하게 등장합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서양식 화장품과 향료가 수입됐고, 특히 경성·평양 같은 도시에서는 이미 향수 문화가 일부 자리잡았습니다.
다만 해방 직전과 직후의 상황은 조금 달랐습니다. 전쟁과 식민지 통치로 인해 고급 수입 향수는 매우 귀했고, 대중적으로는 가벼운 시트러스 계열 코롱이나 포마드, 화장수(오데코롱 역할)가 주로 사용됐습니다. 당시의 코롱은 알코올 베이스에 레몬·베르가못·네롤리 등의 향을 넣은 산뜻한 스타일이 많았습니다.
해방 직후의 현실 – 청결의 향
광복의 감격과 함께 찾아온 것은 물자난이었습니다. 비누, 세제, 화장품 같은 생활필수품은 품귀 현상을 빚었고, 사람들은 작은 비누 한 조각도 아껴 썼습니다. 당시 비누향은 ‘깨끗함과 새 출발’을 상징하는 특별한 향이었습니다. 흔히 들고 다니던 비누나 세탁 세제의 향기는 지금처럼 다양한 향료가 들어간 복합 향이 아니라, 코코넛 지방산 기반의 단순하고 비누다운 향이었습니다.
집에서 재현하는 “1945년의 향”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오늘날 안전하게 재현할 수 있는 세 가지 블렌드 레시피를 소개합니다.
(IFRA 기준, 알러지 주의, 원료 안전성 확인 필수)
- 훈향 오마주 디퓨저 블렌드
- 샌달우드 6방울
- 인센스 3방울
- 화이트 머스크(프래그런스 오일) 2방울
- 유칼립투스 1방울
- 50ml 캐리어 오일(스위트 아몬드)
→ 우디·청량·머스크가 어우러진 전통 향낭 느낌.
- 머릿기름 오마주 헤어 오일
- 카멜리아 오일 30ml
- 로즈우드 2방울
- 라벤더 1방울
→ 머릿결 윤기 + 은은한 전통 헤어 오일 향기.
- 도시 코롱 블렌드
- 레몬 5방울
- 베르가못 3방울
- 네롤리 2방울
- 오크모스 리워크 1방울(알러젠 규제 확인)
- 30ml 알코올(95%)
→ 해방 직전~직후 도시 여성들이 즐겼을 법한 산뜻한 시트러스 코롱.
광복절과 향기의 의미
광복절은 단순히 역사의 한 장면이 아니라, 잃었던 것을 되찾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기 시작한 날입니다. 그 시절의 향을 상상하고 재현하는 일은 단순한 향수 놀이가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감정·문화를 다시 느끼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1945년의 향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 속에는 회복의 기운과 삶의 온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오늘 광복절에 향 한 점 피우고, 머릿결에 오일을 발라 빗질하며, 그날의 공기를 마음속에 그려보는 건 어떨까요.
향기롭게 정리해 보자면,
1945년의 향은 전통과 근대, 절제와 희망이 뒤섞인 공기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맡는 향수·아로마 오일 속에 그 시대의 향기를 한 방울 더한다면, 광복절의 의미를 조금 더 깊이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참고 문헌 및 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향낭」, 「향갑」 전시 및 해설 자료, 국립민속박물관 온라인 전시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백기름」, 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 하수민, 「조선후기 왕실 향 문화와 香匠 연구」, 『한국전통문화연구』 제31호,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연구소, 2023, 7–47쪽.
- 아모레퍼시픽, 『아모레 70년사』, 아모레퍼시픽, 2015.
- 동아일보·조선일보, 1920~1930년대 신문 지면 광고 자료(향수, 코롱, 포마드), 국립중앙도서관 신문 아카이브.
- 김영희 외, 「조선시대 향료의 용도와 문화사적 의미」, 『한국향토생활문화학회지』 제28호, 2015.
- 서울역사편찬원, 「광복 직후 서울의 생활사」, 서울역사편찬원, 2018.